오랫동안 들고 있었던 의문이다. 트위터 친구님들과 관련 내용을 주고 받다가 다시금 들어본다.
5천년 전에도 그 시대에 맞는 인간다움이 있다. 현재에도 그 인간다움이 있다. 미래에도 있겠지. 시간과 공간을 벗어나 인간다움을 정의할 수 없다. 그 뜻의 의미는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과의 공감대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공간을 벗어나 인간다움을 이야기 하기엔 무리가 있다 . (컴퓨터 백업의 의미로 본다면 차등백업을 생각해보자.)
나무가 있다. 어제 보았던 나무가 오늘 보았던 나무와 같은가?
자세히 들여다보면 차이가 있다. 자연은 그 무언가를 위해 끊임없이 움직이고 성장한다. 새가 집을 지었을 수도 있고 흰개미들이 점령했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이름을 지어 소통하려 했던 의미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게 다는 아니라는 것을 이야기 하고 싶다.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 인간이 사회를 구성하고 살아가는데 있어서 소통의 의미는 크다. 불필요한 표현으로 서로에게 상처주는 일이 허다하다. 같은 말을 하지만 의심부터 하려 든다. 때려서 코피나는 것도 아닌데 이야기만 듣고 슬퍼하고 기뻐한다. 동물들이 본다면 참 별종들이다고 할 거 같다.
인간이 가진 이러한 언어와 소통들은 문화를 낳는다. 그 문화가 공동체의 성질을 결정한다. 문화공동체 속에서 한 인간으로 살아가는 것이 인간다운 것이고 그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다. IT서비스의 세계화 속에서 다양한 문화가 인터넷을 통해 소통된다. 참 흥분되는 일이다.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전쟁을 일으키던 일은 앞으로 지구상에서 없어져야 할 것이다. 우리가 인터넷을 통해서 건강한 지구문화공동체를 만들어 나가 평화로운 지구를 만들어 갈 수 있기를 기원한다.
(더운 날 카페에서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잡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