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내리는 2009년 12월 27일, 살아온 동안 많은 분들에게 신세를 지고 도움을 받았다.
그 분들을 기억하기 위해서 글을 써 보기로 했다.
내 청소년기는 그렇게 유쾌하지 못했다.
20대 초 가장이 되어서 할머니와 여동생과 함께 살아갈 때 이야기다.
공사판 막노동, 이삿짐센터, 음식 배달, 조선소, 자동차 정비소, 신문 배달 잡다한 일 들을 많이 해 본 편이다.
멸치잡이 배도 1년 정도 탔다. 가장 친한 놈 ‘정주경’이를 만난 것도 그 시기다.
내가 통신설비 일을 하고 있을 때다.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전화 통신 설비를 하는 일이다.
1년의 경력이 되었을 때, 대학생 아르바이트생이 들어 왔다.
대학생들 중에서도 유독 컴퓨터를 잘 다루는 그런 형이였다.
고등학교를 다닐 때 점심 먹고 바로 전산실로 향했던 옛 기억이 되살아 나서 그 형과의 이야기들은 매우 흥미로웠다.
여동생에게 펜티엄 컴퓨터를 사겠다고 선언했다. 명분은 여동생이 상업고등학교에 진학하는 계기로.
펜티엄 컴퓨터가 왔다. 과거 486으로 몇달 가지고 놀던게 다였던 나였다.
내가 기본 좀 공부하고 여동생 방에 놔 두기로 약속 했지만, 사실 그럴 틈은 없었다.
직장 다녀와서 씻지도 않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그러고는 새벽 2시~3시에 잔다.
전화 요금이 15만원씩 나와도 투자라고 생각했다. PC통신에서 뭔가를 다운 받는 일은 내 사랑을 넘어 중독 수준에 이르렀다.
그렇게 컴퓨터에 빠져 살다 보니 새로운 네트워크에 관심이 많았고, 그때 한국통신(KT)에 근무하시던 김 명석 대리님을 알게 되었다.
그 시기에는 PC통신도 새로웠지만 인터넷이 태동하던 시기라 그런 문의는 거의 그 분이 담당하시게 되었는데, 통영에서 꽤 한다는 사람은 그 분을 안통하고는 상품 신청이 안되었던 시절이다.
그 분에게 들은 바로는 나 정도면 통영에서 손가락에 꼽힌다는 말이 내가 컴퓨터 관련업으로 진입하게 된 계기가 된 것이다.
홈페이지에 perl 로 된 게시판을 가진게 나 밖에 없다는 이유에서 다른 사람들을 찾아갈 때 내 홈페이지를 소개시켜 주시곤 했다.
내 직장을 알아봐 주신다고 하셨다. 가정 형편도 넉넉하지 않은 편인데 열심히 하는 친구가 있다면서, 거제지역에나 통영지역에 직장을 소개해 주시러 다녀 주셨다.
그 시절에는 앞으로 내가 성공하게 되면 그 분에게 꼭 성공해서 보답하리라고 굳게 다짐하고는 했다.
운이 좋아서 그렇게 쌓은 인맥으로 나를 알리게 되었고, 기회를 잡게 되었다.
통영 최초의 웹에이전시의 기술팀장을 맡게 되고 4천만원 상당의 IBM Netfinity 서버 듀대를 만지게 된 계기가 온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어떤이의 관심에서부터 시작하게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김명석 대리님이 없었다면 난 컴퓨터업을 시작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 역시 사회생활을 하면서 많은 초심자들을 접하지만, 이렇게까지 관심가져 주지 못했다.
누군가의 애정이 어떤이에게는 인생에 큰 변화를 주게 한다.
그런 분들을 존경하며 나 역시 그렇게 살기로 다짐한다.
몸이 멀리 있으니 마음이라도 전하고 싶어서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다.
앞으로도 지금껏 나를 도와주신 많은 분들을 소개하려 한다.
건강하세요.